[유린주희] 거짓말

Posted by 알수없는
2016. 9. 7. 23:04 탐정뎐/탐정뎐 소설

유린은 공부를 하다가 잠시 허리를 피며 지금까지 정리한 노트를 보았다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밖에서 들려오는 tv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코미디 프로그램이었는지 방청객들이 깔깔대며 웃는 소리와 함께 최대한 소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키득대는 주희의 목소리가 들렸다최근 말이 눈에 띄게 적어진 주희가 신경쓰였지만 유린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해 그저 초조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시험은 마지막 하나가 남았고 아직 날도 몇일 남았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어제 모든 일정이 끝났어야 하지만 교수님이 갑자기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시험기간이 길어진 것이다조금 말이라도 걸어볼까.라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한참을 머뭇거리기만 하고 결국은 다시 제자리에 앉아 펜을 잡았다.



최근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 했었다하지만 매번 실패하거나 어물쩡 넘어가버리게 되는 것이다눈치가 빠른 주희는 자신이 꺼낼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평소처럼 보채거나 곧바로 물어오지 않았다그래서 그녀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예상하고 있는지이미 눈치채고 있는것인지이미 알고 있다면 어째서 지금까지 아무말도 해주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평소에는 언제나 솔직하고 직구 던지는 것이 당연하던 사람이 이렇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니 너무나도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었다오랫동안 고민하다가는 맘이라도 편히 먹기위해 주희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결론 내리고 마는 것이다.



사실 자신의 유린은 주희에게 정확히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몰랐다그냥 이전보다 대화가 조금 줄고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 뿐 변한 것은 없었다그리고 줄어든은 시간은 서로의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다그런 것들을 고려한다면 어린애처럼 그녀 앞에서 투덜대거나 불평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나이 차이를 생각한다면 그런 일들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유린은 착잡한 마음을 다시 정리하며 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희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몇 번이나 채널을 돌렸지만 마땅히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지 못해 tv를 껐다다시 집 안에 찾아온 정적시험기간이라 정신없이 공부하기에 바쁜 유린이 있는 방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왔다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 유린은 언제나 방문을 열어 놓은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예민한 성격에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하면서 주희를 위해 항상 문을 열어놓고 공부를 하거나 작업을 했다그런 마음이 고마워 처음에는 tv도 잘 보지 않았지만 유린이 그럴필요가 없다고 말해준 후로는 소리를 작게 해두고 tv를 시청하거나 음악을 듣고는 했다.



고개를 돌려 불빛이 나오는 방안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밤 11아침에 약한 유린이 가장 공부하기 좋은 시간이다이 시간이 되면 주희는 피곤함을 느끼고 눈이 반쯤 감긴채로 있지만 유린의 눈에서는 구슬을 박아 놓은 것처럼 언제나 빛이 났다.

주희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부엌에서 커피를 꺼냈다조용히 커피를 갈아 드리퍼에 넣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주전자에 물을 담고서 뚜껑을 연채로 온도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뚜껑을 닫지 않은 구리 주전자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얼굴을 덮었다뜨거운 온기에 눈을 슬며시 감았다가 부드럽게 입김을 불어 하얀 김들을 허공에 흩트렸다시간이 흘러 김이 천천히 주전자를 타고 흘러 내릴때쯤 뚜껑을 닫고 갈아진 원두 위로 물을 부었다.



가운데부터 조용히그리고 천천히일정한 속도로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물줄리의 굵기의 변화에 주의해서 작은 원을 그리며 천천히 바깥을 향한다종이에 물이 직접 닿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한번 원두를 적실만큼 물을 붓고서 1분정도 기다린다. 유린이 이전에 가르쳐줬던 노하우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주희는 주전자를 들어올렸다.



싱싱한 원두여서 그런지 부엌을 가득매우는 커피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1분정도 시간이 지난 뒤 모락모락 거품이 나는 모습을 보며 주희는 정성스레 커피를 내렸다두 번 정도 모락모락 올라오는 거품을 내며 원두를 내린 뒤 마지막에는 물을 한 번에 붓고서 물이 반쯤 내려갔을 때 드리퍼를 들어올렸다마지막 물까지 모두 내리게 되면 쓴맛이 남게 되어 커피의 맛이 나빠진다고 주의를 줬던 그녀의 마지막 조언까지 모두 지켜낸 순간이었다.



찬장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잔을 꺼내 원액을 담아 주었다그리고 자신이 마실 커피에는 주전자에 남아 있던 물을 타 연하게 만들었다커피를 들고 방문을 열자 쉴 틈 없이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유린의 뒷모습이 보였다무엇인가 하나에 빠지면 집중력이 뛰어나 왠만해서는 잘 빠져나오지 않는 저 모습을 좋아하지만이렇게 자신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돌아봐주지 않는 무심함에는 가끔씩 상처받기도 했다그리고 아무래도 오늘이 그 날이 될 것 같다고 주희는 생각했다.



애써 담담한 척 발걸음을 옮겨 조용히 그녀 옆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제서야 향기 때문인지아니면 인기척 때문인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려놓은 커피를 한번 보고 주희를 올려보았다.

 


고마워요.”

“...너무 무리하지 마요.”

이제 거의 끝나가니까 괜찮아요.”

 


언제나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괜찮아요이러니까 괜찮아요저러니까 괜찮아요힘든 것이 있어도 한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듣고 화가 난 채로 찾아가면 두 손으로 어깨를 부드럽게 잡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괜찮아요이제 다 해결됐어요.



주희는 과거의 기억들을 애써 지우며 유린이 눈치채지 못하게 낮은 한숨을 내어쉬었다혼자 자면 외로우니까 어서 끝내고 와요.라던지 30분 줄께요약속 어기면 내일 아침식사 당번이에요.라는 농담을 던져야하는 주희가 아무말도 하지 않다 유린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주희씨?”

“...괜찮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요.”

 


주희는 자신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는 것을 의식하고 방금 전의 행동들을 유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환하게 웃었다유린은 표정에 남아 있던 걱정들을 지우며 평소처럼 작게 미소지으며 미안하다면서 웃었다주희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려주고 초조함을 지운 발걸음으로 조용히 침실로 향했다침실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고 그대로 문에 기대었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언제나 괜찮다고 거짓말 하는 당신을 닮아가는 것일까.

오늘처럼 외로운 날에는 함께 있어도 쓸쓸하고

옆에 있어도 보고싶은 것인데

차마 당시에게는 말하지 못하겠다.

 


혹시나 당신에게 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혹시나 어린 자신에게 질려 떠나버리지는 않을까얼마 전에 울며 전화 통화했던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꽤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 사귀고 있어서 통하는 것이 많던 친구였다헤어지자고 통보받은 그녀가 울면서 늘어놓은 그 이유들이 하나같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혀왔다모두 자신이 유린에게 행동하던 모습들 그대로였다.



솔직한 주희씨가 좋아요.’

건방지다기 보다는 용기가 있는거죠.’

원하는 것을 말해주는게 전 더 좋아요.’



그의 말에 따르면 그런 말들이 자신을 옭아 매고 부담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주희는 처음으로 유린과 자신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마치 친구와 그 남자의 관계를 바라보는 것처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첫 만남부터 유린이 먼저 시작하거나 요구한 것은 없었다아무것도 모르던 유린을 따라다닌 것도 자신이었다동성과 사귀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던 그녀를 붙잡고 따라다니다가 사귀게 된 것도 끈질긴 고백 때문이었다나이 차이 때문에 고민하던 그녀의 생각들을 쓸대 없는 것이라며 타박한 것도 자신이었다마치 정답만을 말해주는 듯이 자신 만만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정작 돌아보면 유린은 처음부터 모든 상황들을 파악하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대 없는 것이라며 그만두라는 자신의 말에 제대로된 반박조차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주었다주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철없는 행동들에 아찔함을 느끼며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당신을 만난 뒤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괜찮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요.’

 


대체 뭐가 괜찮다는 것일까.

대체 누가 괜찮다는 것인지.



불안해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건낸 말이었지만 사실 나 자신을 향해 괜찮아져야만 한다고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괜찮지 않아진다면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그러니까 괜찮아야해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붙잡아 현실이라는 시궁찰에 몰아 붙이고 있는 것은 자신이니까어떻게든 책임지고 감당해내야 한다.

당신이 내게 했던 것처럼 -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인 것 뿐이야비록 비겁하게 거짓말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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